[스크랩] 대간3-24차(17-02-04)하늘재-마골치-꼭두바위봉-1032봉-부리기재~밖마을:힘들었지만 행복했던길
대간3-24차(17-02-04):하늘재-마골치-꼭두바위봉-1032봉(꾀꼬리봉갈림길)-부리기재~~밖마을(901지방도로)
============================================================================================
1.뫼산 산악회--24차:입춘에 맞게 날씨
는 봄의 문턱, 며칠전 내린 눈밟기는 좋았지만 마루금의 깊은 눈을 피해 가느라
마른 나뭇가지와 싸움과, 꼭두바위봉 내리막과 몇군데의 암릉구간의 어려운 통과로 예상보다 많은
시간소요됨(14.18Km--8시간28분 소요---Tranggle)
***사유:1)마골치 지나면서 녹아가는 눈길과 마루금의 깊은 눈길을 피해 옆길가니 힘들었고(얼굴에 상채기??),특히
위험 구간에 분명히 있었던 로프가 깨끗이 없어 져 버렸으니 시간지체(지오내님의 로프 준비덕분에 내려올수
있었다--지오내님 --정말 감사드립니다!준비성 최고입니다---한수 배웁니다)
2)길은 알바할때가 없었지만--부리기재에 있던 (16-02-23에 사진 담았던)--이정표가 사라졌기에 대미산으로
일부 진행한 알바(아주 짧지만--헷갈렸다)도 지체의 원인이었다--Tranggle의 트렉 따라가기를 잘이용해야 겠다
2.이번 대간길에 유익하고 재밌는 역사적 문화적인 하늘재 이야기들--
1)신라의 아달리이사금 왕때(156년)북진정책으로 한반도 최초의 고갯길(계립령)이 열린 역사의 고개인 하늘재를 지난다
*삼국시대북진과 남진의 군사적인 전략의 요충이었으니---고구려 온달장군의 침략,후삼국시대 궁예도 넘었고,몽고의 침략
에도 시달렸고,1,362년 홍건적의 난때 공민왕도 이고개를 넘었고, 특히 신라-망국의 限을 품은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애틋한 전설이 서린 고개다.--포암산쪽의 신라시대 石城의 흔적이 치열한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암시한다.
**또한 다양한 문화와 문명의 길이었다---삼국시대 새로운 문명의 원동력이 된 불교가 신라로 전해진 “불교 문화 전래의길”
**영남지방의 도자기등 산물과 충청이북지방에서 생산된 많은 물산의 交易이 이루어진 남북무역의 關門역활
***따라서 하늘재를 중심으로 충주쪽의 미륵리와 문경쪽의 관음리의 지명이 말해준다--불교의 종파와 도량등의 시대적 차이
는 있지만 충주쪽 “미륵리”는 미륵사상--문경쪽 “관음리”는 관음사상의 불교 문화 사적을 볼수있는데,군사적 요충에
있다보니 외세(특히 몽고의 침입)에 의해 거의 消失되버린 수난의 지역이기도 하다
***도자기 마을의 발전:충주쪽 미륵리,“점말”과 문경쪽 관음리 “사점”마을은 사기그릇을 굽던 마을이었고,미륵리쪽은 도기
굽던일이 사라졌지만 문경쪽은 “흙+물+나무”--도기 굽기의 3대 요소가 좋아서인지 --지금까지 사기그릇을 구워왔고
일본사람들이 최고의 도자기로 꼽는 이도다완(井戶茶碗)--(원래 우리나라 서민들의 찻잔이었다)을 재현 함으로 문경은
도자기로 유명하다.
***미륵리 쪽에는 지금은 석조물이 일부 남아있는 미륵리 사지(彌勒里 寺址)--(彌勒大院址라고도부름)에 대표적 石佛인
미륵대불이 북향하고 잔잔한 미소로 북향을 하고 있다(마의태자 상 이라 민초들이 명명) 또 문경 관음리에는 통일 신라
시대에 조선된 반가사유상,약사여래입상등 불교 石物들이 산재한다--전란에 많이 사라졌지만 우리 선조들께서 남겨주신 문화적 예술적 유산에 다시한번더 감사를 드리고 싶다.
2)민초들의 전설과 문화재의 시대에 얽힌 逆說을 잠시 생각해본다
*충주 미륵리 미륵사지의 미륵대불은 麻衣太子像이고,맞은편 북쪽의 월악산 덕주사 마애불은 누이 덕주공주像으로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에 마의태자는 미륵대불을 세웠고, 덕주사의 공주는 마애불을 조성하여 남매가
서로 마주보는 애틋한 사연으로 전해 지는데--이는 신라인들이 고려에 대항하여 마의태자의 복위를 바라는 마음들의
표출이 아닌가 생각된다--아무튼 참 귀하게 남아 있는 문화 유산임에 틀림없다.
**史實은 大院址의 발굴조사에 의하면 石造와 木構造를 결합한 石窟사원으로 신라의 석굴암을 일부 모방한 점이 있지만
목구조는 13세기 고려 고종때 몽고의 침입때 소실되었고 주존불인 미륵대불,석등,5층석탑등 여러 석조물은 남아있어
그 조각들의 기법과 수법들이 고려 초기인 10세기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고려 태조 왕건이 점령지인 신라를
포용하며 새로운 나라를 열기위하여 월악산 자락에 佛事를 일으켰다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암튼 전설같은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像으로 믿어도 될 것 같으나 참 알 수 없다--암튼 위대한 우리 선조들의 유산이 잘 복원되고 보존
될수 있어 역사의 교훈을 길이길이 남길수 있으면 좋겠다.
3)布岩산(포암산);(961.7m);암릉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봉우리가 마치 베(布-포)로 덮어놓은 듯 하여 유래된이름이고
깔딱의 연속이지만 소나무와 바위들이 잘 어우러진 동양화의 풍경 같은 속으로 오르면
가슴이 탁 열리고 눈은 온산하를 굽어보며 호연지기를 맛보고 마음은 더없이 텅 비어진다.
암튼 오늘 하루--뻐근하고 빡빡했지만 함께한분들 덕분에 참 행복한 하루였다.시간이 너무늦어 문경읍-시장통의
시장순대국 식당에서 순대국 한그릇 못한 아쉬움이 좀 남는다.
또 앞에서 힘차게 나아가시며 이끌어 주신 若山형님께 감사드린다--그리고 영산홍대장님+후미의 산이좋아님, 사진 봉사 해주신 강강님,로프 준비해주신 지오내님 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함께하신 모든 산우님등 고맙습니다.
注:윗글의 중요 내용은 “백두대간 가는길”(민병준지음)과 “우리명승기행”(김학범지음)에서 참조하였습니다.
하늘재를 공부함:遺墟碑의 의미는:先賢들의 자취가 남아있는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碑(백과사전 사전에서);알고보니 한번은 선현들의 뜻을 배울지어다
하늘재 산장이 빈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인장의 뒷모습과 함께 남겨본다--언제한번 이곳에서 하늘재의 역사와 숨결을
편안히 맛볼수 있기를 ---
겨울에도 산인들에게 달콤한 석간수를 제공하는 하늘샘--오늘은 시작점이라 지나간다
미륵이나 관음을 기다리며--고뇌하는 분의 모습---
멀리 주흘산과 영봉이 우림차다
동양화속 같은 한송이 소나무가 멋지다
포암산 정상 전에 본 만수봉 뒤로 이어진 월악산의 위용앞에 -한마리 올빼미가 졸고있고--자연의 신비
약산형님의 멋진 스냎--죄송해요 얼굴이 좀 어둡게 나와습니다
뫼산의 현재외 미래를 짊어지신분들---
비탈진 북서쪽 눈길을 잘도 가신다
두분의 오손도손 산보하시는듯한 모습--언제나 행복하세요
역시 말리님은 뫼산의 보배입니다--포즈도 멋지고
도라지님들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요---언제나 최고의 모법적인 한쌍입니다
겨울 산의 보물--겨우살이들---참나무들의 식생이 좋으니 얌채같은 겨우살이에게 여유를 남갸준다--겨우살이는 얌체같이
참나무에 기생하면서도 어느정도는 광합성으로 양식을 생산하고 새들에게는 가장 맛난 식사를제공하며 자손을 번식하고,인간에게는 한약재나 茶용도로 생명을 다하는 겨울산의 보물이다
이제 입춘도 지나면 --요런 폭신한 눈길맛도 사라지고---새생명이 살아나기를 기대해본다
금빛으로 자태를 뽐내는 서리취의 고고한 모습---겨울의 마른 꽃도 참 아름답다--먼저 발견하신 약산 형님께 감사
여기도 겨우살이들의 천국이다----까치집을 찾아 보세요
오늘 마골치 지나서 힘차게 럿셀하며 길을 터 가시는 약산형님의 열정을 따라갈수가 없다--형님 감사합니다
소나무에 기생하는 소나무 담쟁이-일명 송담---얘들은 모조리 짤라야한다--겨우살이는 참나무에 정말 겨우살이하며 도음을 받는데 ,얘들은 소나무나 참나무에 기생하여 돌돌 말아올라가서 모든 영양을 탈취하여 결국에는 소나무나 참나무를 枯死
시키는 악종이다.근데 얘들은 당뇨에 좋고,관절 기능의증강, 등등에 아주 좋은 것이니 짤라서 소나무도 보호하고 약재로도
사용하면 좋겠다---자세한 내용은 --소나무 담쟁이 나 송담을 검색하면 충분히 알수있다
곡두바위봉에서 본 오늘의 갈길---1032봉넘어서 부리기재--그리고 다음길--대미산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이런 동굴도 지나고--눈땜에 옆으로 돌아가다 보았다
4쌍둥이 가 참 다정도 하게 잘 자랐다
쭉쭉 뻗은 나무들+강강님의 날씬한 모습니 잘 어울린다
오늘 최고의 위험하고 어려운 내리막---지오내님의 로푸와 영산홍 대장님의 지휘로 약 2.5m높이의 직벽을 통과하다
따뜻해진 날씨로 북사면에 남은 잔설이 폭신한 백설기 같아 먹음직스럽다
1032봉(우측으로 꾀꼬리봉 갈림길)에서 땡겨본 소백산 천문대의 아련한 모습 --
김인덕님 앞쪽에 부리기재의 이정표가 있었는데 --참헷갈렸다---어디로 바람과 함께 사라졌단 말인가????
요게 작년 2번째 대간때(16-02-23)에 담아두었던 부리기재 이정표인데--누구늬 소행인가??다음에 올때 손수그려 코팅하여 달아두어야 겠다
감사합니다---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