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늘의 산행개요:대간 2번째-13차(15'04'27 -28:무박진행:좋은사람들과 함께)
1)4/28 ;05'21;백복령 출발-원방재-상월산-이기령-갈미봉-고적대-연칠성령-청옥산-박달재-->하산 ;쌍폭-무릉계곡-주차장:15'55분도착 종료
10시간 34분 소요/약 25Km(하산길;5.6Km포함)
2)2014.6.28.첫번째는 백복령-갈미봉지나 고적대 3거리에서 사원터로 하산:당일산행으로 22.8Km/8시간에 완료하였으니 이번에는,산을 즐기면서
사진도 찍고,야생화도 감상 하며 여유있게 진행하였다.
백복령에서 새벽 밝음을 맞이하며 힘차게 출발
백복령을 출발하여 뒷쪽의 자병산(紫屛山)을 돌아보니 지난번과같이 가슴이 미여온다.자주색 산병풍처름 아름다워
이름도 자병산이 시멘트원료광산이 되어 마루금이 없어지는 아픔을 보여준다
우리들을 위한 급경사의 나무계단이 흉물스런 장애물로 변모한모습;옆으로 다니는 길이 새로 생겼다.
새로 복구하여 후답자와 산길보호를 할수있도록 강릉시에서 조치를 해주시기바란다
이기령에서 아침요기겸 잠시 숨고른다
오늘 마루금에서 청옥산다음으로 우뚝솟아 두타,청옥과 함께 해동삼봉의 명성으로 유명하다
아주옛날 이산정에서 靑玉이 발견되어 청옥산으로 불려왔단다.청옥은 불교경전인 아미타경에 나오는 7가지 보석중의
하나라고 한는데,지금어느곳에도 靑玉의 흔적을 찾을 수없다.
이곳의 바위들은 정말신기하다.칼로 정확하게 짜른 자연의 조화가 신비로울뿐이다
하산길이 급경사로 힘은 들었지만 중간지점에서 족탁과 세수하여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무리
한다.다음에 다시한번더 (댓재-박달재) 만나기를 기대하면서---
*** 백복령에서 시작하는 본구간에는 사연도 많다,대간분수령에 얽힌 역사,문화,옛선인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있는 곳이다.
이지역은 특히 東高西低가 극심한 지역으로 우리가 지나온 대관령,닭목령,삽당령과함께 백복령은 강원내륙의 농산물과 동해
바다의 해산물이 유통되었던 문화 경제의 중요한 교통로 였다.그러나,임진왜란,6/25동란, 우리나라의 산업경제발전으로 자연피해와
옛우리문화와 역사적 사실이 크게 왜곡되어있지만 아직도 바로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뿐이다.***
1.첫째:백복령 한자표기의 잘못됨을 지적하니 국토지리원을 빠른 시일내에 원래 우리 조상들이 부르던 이름으로 수정해주시기 바란다;
1)지금 국토지리원의 공식 한자명은;白伏嶺으로 이는 백기를 들고 얻드려 항복하는 재의 뜻으로 풀이되는데,일제때의 관리가 우리의 문화와
역사적 사실을 고의 적으로 왜곡하려고 의도적으로 개명한것으로 알수있다 왜냐면,이백복령의 유래는 다양한데,(1)옛날 한약제인 白茯笭이
많이 생산된유래도 있고(2),대동여지도와 산경표에는 白福嶺+百複嶺으로 혼용하고있고(3)택리지엔 하얀봉황인白鳳嶺으로(4)옛고문서와 신증동국여지승람
에는 希福峴으로도 보이는 지명이다;어째든 원지명은 복이 많고, 복을 바라고,봉황도 넘나드는 상스러운 지명이었음에 틀림없지않은가???
(5)오늘날 고개에 사는 노인들은 순수우리말로"뱃복이재"로 불려왔단다;즉 뱃복은 순수우리말로 배꼽의 옛말인데 이지역이 카르스트지형의 특징인
돌리네 현상으로 움푹파인 웅덩이가 인체의 배꼽처럼 보인다는데서 유래한지명임을 알수있지만,문제는 한자표기를 우리옛문헌되로 바로잡아야 하겠다
<참고자료:백두대간 가는길;민병준 지음>
2.紫屛山의 슬픈모습:일그러진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과 다를바 없는것 같아 그저 슬프고 가슴만 아플뿐이다.
이지역이 석회석지역으로 양질의 시멘트 원료를 채굴함으로인하여 원래의 아름다움 모습과 대간의 마루금은 없어지고 말았다.
시멘트생산으로 우리의 건축/수출로 경제에 일조를하여왔고,또하고있는 현실적인 사실을 무시할수없는 현실이지만,강릉시와 라파즈 한라시멘트(주)는
최선을 다하여 복원하여 훗날 우리자연환경보호에대한 귀감이될수있도록 하여 주시기바라뿐이다.
1)사실 대간종주중에 가슴치며 눈물흘린곳이 자병산과 2014년9월 첫번째 대간종주를 졸업하던날의 감격과 진부령에서 향로봉을 빤히 보고도 더이상 갈수
없는 사실에 눈물을 흘리지않을수없었다.
2)개인적으로라도 향로봉을 답사하려고 백방으로 조사하였지만 군사적, 산림보호라는 명분땜에 포기 할수밖에 없었다.비록 남북의 대치로,향로봉 넘어서
진행할수없겠지만,산림청과 국방부당국자는 우리의 염원을 받아주시어 예약제를 하더라도 개방할수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3.東海市의 유래;묵호읍과 북평읍을 통합하여 동해시로 발전함.
1)묵호읍은 한적한 어촌으로 동해사람들의 향수가 깃든 곳으로 오징어 산지로 유명하였고,옛날 해일(아마도 지진)로 바다와 온고을이 검게 변하여 조사온
관리가 墨(먹묵)湖로 칭하였고,1900년대 도계,태백지역의 석탄이 이곳에서 선적됨으로 온동네가 검게되어 墨湖라 칭하게되었단다.
이제는 그저 한적하고 조용한 포구일뿐이다.
2)북평은 한때 북한의 무장공비침투를 방어하기위한 "동해안 경비사령부"가 주둔하였고(지금은??)개인적으로 1968년 1-21 사태후에 북한무장공비 소탕과
지금의 특전사 전신인 제1유격여단의 창설요원으로 차출되어 이곳 사령부에서 태백준령의 마루금을 사수하는 임지로 떠나던 출정식을 가졌던곳이라
언제나 가슴뭉클한 감회를 느낀다.
3)이제는 묵호도 북평도 옛추억은 사라지고,동해의 명물인 湫岩(추암);애국가 첫소절에 일출장면으로 등장하는 日出의 명소로 유명하다.
4.靑玉山(1403.7m);海東三峰(두타,청옥,고적대)의 하나로 서로 연결되어있고,옛날 靑玉이 발견되었다고 유래된 지명이지만 청옥의 흔적은 없지만,靑玉은
불교 경전인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세계의 7가지보석(금,은,수정,적진주,마노,호박,청옥)의 하나임으로 두타산과 함께 이지역이 신라때부터 성했던 불교와
아주깊은 인연이 있고,현재도 삼화사,관음암,천응사가 남아 있어 신라때부터의 융성했던 절집을 몸과 마음으로 느낄수있는 곳이다.
특히 두타산은 일명,골때리는 산으로 나쁘게 얘기하지만 사실頭陀는 불교용어로 세속의 108번뇌를 버리고 정진의 길을 가는 산이라는 깊은뜻을 가진 명산이
아니겠는가??다음산행에서 두타산의 심오한 정신적 가르침에 빠저보는것도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하는 氣를 받을수있을것이다.
5.武陵溪谷;두타산과 청옥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흐른는 이계곡은 깍아지른 암벽,반석,폭포(쌍폭,용추폭포등)와 1000여명이 함께앉을수있는 2000평정도의
암반석이 유명하고,수많은 선인,묵객들이 풍류를 즐겼고,특히 조선시대 4대명필인 "양사언"의 암각서인"武陵仙源 中台泉石 頭陀洞天"(신선이놀던 무릉도원
너른 암반과 샘이솟는 바위 번뇌조차 먼지처럼 사라져버린 골짝"이란 뜻의 글이 이계곡의 모든것을 말해주는듯하다.세월의 흐름을 못이겨 1995년 원본을 본뜬
석각을 금란정 옆에 만들어 두었다.
1)그러나 이러한 아름답고 무릉도원같은 곳이지만,임진왜란과 6,25동란중에 이곳에서 죽어간 수천 수만 목숨들의 아우성이 지금도 울리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2)골짜기 지명중에 파소,비린내골,파소굽이등 원한서린 지명이 떠도는 슬픈역사의 골짜기이기더 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함께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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