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한양도성 하루에 돌아보다

마무리B 2026. 2. 10. 09:50

漢陽都城巡城(한양도성 순성)(26-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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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도성 안팍을 걸으며 경치를 즐기며 걸었다던 풍습을 상상해보며 하루에 한바퀴 돌면서

26년의 조그만 소원을 빌어 보았습니다.(소소한 것 들에서 기쁨을 맛보게 될수있기를~~~)

1.시청역8번출구---남대문 ---인중근의사 기념관à남산à광희문à흥인지문(동대문)--낙산공원

 ---혜화문---와룡공원---숙정문---청운대---19681-21사태때 총맞은 소나무---백악산---창의문

 ---윤동주시인의 언덕---인왕산---돈의문터(서대문-정동사거리)에서 종료

2.1030분 출발-->17시종료(17.5Km/6시간30)

3.巡城(순성)중에 생각났던 일들

 1)남대문:2008210日帝(일제)때도 살아났던 서울의 상징인 남대문이 소실한 아픔이

         몰려와서 잠시 묵념 하였다.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없기를-----

 2)안중근의사 기념관: 잊지 말아야 할 곳: 이곳은 日帝(일제)때 일본이 침략을 확고하게 하며

                     그들의 神社(신사)를 세웠던 곳이다.

 3)남산 봉수대: 조선시대 전국 봉수로의 종착지였고 전국에서 올라온 경보를 兵曹(병조)에 종합보고

              하는 중앙봉수대 역할을 하였다.

 4)남소문터: 국립극장 앞에서 한남동 가는 고개(반얀트리 호텔 담벼락)근처에 표식만 있다.

 5)DDP(동대문 디자인 프라자): 아픈 역사의 현장 이었던  곳이 디자인과 전시등을 위한 새로운

명소로 유명 하지만

우리 민족의 아픔과 우리나라 체육계의 喜怒哀樂(희로애락)이 묻혀진 역사적인 장소이다.

(1)1925: 일제는 조선의 군사시설인 하도감과 염초청이 위치한 자리에경성운동장을세웠고

(2)1945: 광복으로 새로운 이름서울운동장으로 명명 되어 근현대 한국사회의 발전,그리고

 체육계의 굵직한 역사를 공유하는 장소로 발전하였다.

         (특히 70년대 전국 고교 야구대회때 모교 후배들과 함께 응원 했던 젊음이 아련하다.)

(3)1985: 잠실에 올림픽을 위한 서울 종합운동장이 확정되어 동대문운동장이 마지막 이름표 였다

 (참고 자료: 뽐뿌뉴스의 기사를 참조하였습니다)

6)청운대 지나서 1.21사태 소나무:이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아픈 사태의 흔적 이다.

 19681.21. 북한의 특수부대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한 사태로

 이들과 전투 중에 수많은 군경이 전사한 희생으로, 결국 모두 사살하고 김신조를 생포하였다.

 이후 향토예비군이 창설 되었고, 현재 특전사에 합병된 유격여단이란 부대도 창설되었다.

7)彰義門(창의문):1623412일 당시 서인 반정 세력이 광해군을 축출하고 조카인 능양군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 仁祖(인조)반정 때 반군이 창의문을 부수고 진입하여 반정에 성공한 역사적 문이다.

8)인왕산에 올라 북한산-남산-경복궁-서울시내를 조망하니 마음이 답답할 때 땀 흘리며 체력 단련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4.알아두면 유익한 토막 상식

1)한양도성의 둘레: 18.5Km: 백악산에서 1---97개 구간으로 나누어 구간마다 축조실명제로

                            축성하여 A/S를 책임지게 하였다.

2)도성의 4大門(대문):남대문(숭례문)—동대문(흥인지문)—북대문(숙정문)—서대문(돈의문)

         4小門(소문):광희문(시구문 역할)—혜화문(동소문)—창의문(북소문,자하문)-소의문(서소문)

         **서대문과 소의문:서남쪽 문으로 일제 강점기에 훼철 되었습니다.

3)도성의 內4(도성내부의 4개 산):백악(북악산)---낙산(낙타)---남산(목멱산)---인왕산의 능선을 따라 축조 하였다.

4)4산은 도성 외곽의 4개산:북한산---관악산---용마산---덕양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