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2-58차(매요마을-통안재-고남산-여원재)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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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좋은사람들과 함께 2년2개월 간의 대종주를 졸업을 1구간 남긴 뜻깊은 산행길이다
2.날씨도 청량하고 함께한 산우님들도 반갑고,룰룰랄라 편한길을 여유있게 걷는다.;오늘은 고남산(847m)을 오르면 최고다
3.기록:10.3Km/3시간40분~~소요--모든분의 산행능력이 모두 상향 Up-Grade로 평준화 된 것같다
***알아두면 유익하고 재미있는 전설과 상식들(57차에도 비슷한 얘기들이고, 대장님의 안내문을 공부하여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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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지형적특성:대간의 마루금은 사람과 문화를 가르고,물은 사람을 모은다는 지형적인 특징이 확실한구간인 것같다
지나온 복성이재-아막산성--매요리--고남산-여원재--수정봉--노치샘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경계로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고 하여 인월과 고남산아래의 더넓은고원인 운봉고을이 엣날에 신라의 경상도 땅이었고,남원쪽은 백제의
전라도 였다--지금은 행정구역이 인월과운봉이 전북-남원시에 속한다--
2.이구간에서 고남산에 올라보면 사방이 확틔어있어서 군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지점이고,지금은 산불감시초소가 있어---운봉고을을 위시하여 멀리 광주의 무등산,전주의 모악산과 장안산과 백운산까지 아우르는 명산임에 틀림 없다--
3.고남산(847m);고남산-여원재-수정봉으로 이어지는 구간의 가장 높은 산으로 남원시 운봉면과 산동면의 경계를 이룬다
1)옛날이름은 왕산:운봉분지의 소나무가 무성한 옹기종기 마을의 모습이 임금님께 문안 드리는 모습에서 유래하였고
2)정상의 초소옆에 고려말 이성계장군이 왜놈들을 격퇴하러 이곳에 도착하여 제단을 쌓고 산신제를 올린 터가 있다.
지금도 엣날의 제기조각들이 있어 사싱름 말해준다--여원재의 백발여인의 도움으로 이성계는 대승 한다.
3)고남산 정상에 삼국시대에 축성된 고남산성의 흔적도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4)고남산아래의 (운봉고원)--권포리는 이성계장군이 정도전과 함께 새로운 建國의 꿈을 키운 마을이었고,지금도
권포리에는 정도전의 후손들이 집성하여 살고있다고 한다.
4.여원재(480m);대간분수령의 수정봉과 고남산사이에 있고,남원에서 운봉가는 길목의 큰고개며,영호남의 길목이고,물산이
풍족한 고원지대로 전략적 중요한곳으로 왜놈들의 침략과 동학농민 혁명당시 농민군과 관군과의 치열한 접전지 였다.
또한 여원재에 떨어진 빗물은 섬진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고,고려말에 고개주막의 아리따운 주모의 전설에 따른 지명이다.
1)고려말 왜놈들이 침입하여 주막의 아리따운 주모에게 성추행를 하였는데,이에 주모는 왜구의 손을탄 왼쪽 젓가슴을
잘라내고 왜놈에게 몸을 줄수없다하고 자결을 하였으니---이여인의 怨聲과 怨恨이 서려 있었다고 한다----후에
2)한편 왜구정벌의 임무로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전투전략을 고심하던중-어느날밤--꿈속에서 백발의 노파로부터
왜구를 이길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받아 그 유명한 황산의 전투에서--적장 아지발도를 활로쏘아 떨어뜨리고 대승한다
이후,이성계는 고려말 신군부의 수장으로 급부상하였고, 꿈에 계시를 준 백발노파가 자결한 주모의 怨神이라 믿고,주모의
넋을 위로하기위한 사당을 지어 제사를 드렸으니---후에 女院이라 불렀고--여원치-->여원재로 불리고 있다
3)지금도 광천물가에 아지발도의 피가 묻었다는 “피비위”는 여전히 붉은 핏빛이고,
4)운봉고원에서 팔랑치가는 길목의 황산은 지금도 그되로 인데---당시 승전을 기념하여 세웠던--황산대첩비--일제때에
일본인들이 파괴하여 깨어진채로 있는데--역사의 교훈을 배워야 할 것 같다.
5)이러한 운봉의 역사는 살아있어---황산부근의 비전 마을은 판소리 동편제의 발상지이다.
5.운봉고원의 특징과 유명세는 삼국시대---지금현재까지도 이어오는 대간마루금에서 그냥 살고싶은 좋은곳이다.고로
1)목기의 고장이며(전국목기의 50%이상 생산), 판소리 동편제의 고장이며, 동네마다 벅수(돌장승)가 지키고 있고,
2)성리마을은 흥부와 놀부의 고향이고
3)스님들의 밥그릇-바리때-에 비유한 철쭉군락으로 제일 가는 바래봉이 있고,지리산 서북지역의 입구이다.
6.여기서 남원과 운봉하면 그 유명한 춘향전의 이몽룡의 어사출도 장면을 회상하지 않을수 없다.
1)한 학설에 의하면--춘향전의 이몽룡은 당시 실존했던 학문에 뒤어나고ㅡ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을 잘살핀 어사로,목민관
이었던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의 溪西 成以性(1,595~1,644)이란 실존인물을 모델로 창작 죄었다고 한다.
지금도 봉화 물야면 가평리에는 이몽룡의 생가라 하여 宗宅이 있고 宗家의 사랑채는 溪西堂의 현판이 있다.
2)어사 이몽룡이 남원으로 암행가기전에 이 운봉을 지나는데--운봉의 사또는 눈치도 빨라 “이몽룡”을 어사로 알고
고을의 자랑과 백성들이 잘살고 있다고 하며 대접을 잘하여 보냈으니,남원의 변사또가 행사에 불러도 참가하지 않아
화를 면했다고 한다.하여 남원의 변사또 생일 파티에서도 눈치빠른 일부 고을의 사또들은 줄행랑치게 된다.
3)유명한 이몽룡의 詩를 보자--작금의 우리 현실과 너무 똑 같은 것 같아---다음 우리의 사또는 정말 잘 뽑아야지!!!
金樽美酒 千人血,玉盤佳肴 萬姓膏, 燭淚落時 民淚落, 歌聲高處 怨聲高(금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낙시 민루낙
가성고처-원성고)-“금잔속의 맛있는 술은 만백성의 피요,옥쟁반의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을 쥐어짠기름이요,촛물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곳에 백성의 원성이 높구나“--어사출도 장면을 보며 웃지만, 이시대의 암행어사는
어디계시나요?????빨리 “암행어사 출두야”하는 함성을 듣고 싶다.
지난번의 종점--매요마을 -평화롭고 아늑한 마을이다.
마을길로 들며 약간의 알바--
남원시에 부탁드립니다---있는 이정표라도 관리좀해주세요--이곳에서 우측오르막으로 가야한다--몇분이 직진한다
오늘은 대장님이 마구마구 홀로 앞서가신다--
고남산 에서 내려오면 권포리로 가지않고 매요리 진행때 알바하지말라고 많은 표시를 해두었다--통안재
멋진폼의 남설악님과 대장님
맛난 식사시간--모두들 여유로운 모습에 초겨울의 햇살이 따스하다
삼국시대에 축성된 고남산성의 일부
아래의 정경들은 고남산 정상에서 산불감시 하시는 동네 어르신의 도움으로 공부하고 알게 되었다--역시 고남산의 가치를 알았다
망개열매도 아직 반겨준다
산우님들을 위하여 끊임없는 봉사를 해주시는 남설악님!당신께서 함께 하시어 언제나 안전합니다
다음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갈때에 요 벅수에게 인사 잘드리고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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